Artist #9 강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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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을 하고 있습니까?

시선을 그리는 시각예술을 하고 있어요.

눈을 뜨고 있을 때나 감고 있을 때나 우린 무언가를 볼 수 있어요.

그건 내가 본 것으로부터 시작되고 기억을 떠올리거나 다르게 상상하며 다시 새롭게 보여질수 있어요. 

꼭 무언가를 보아야 지만 ‘시각’이 아닌 것 처럼요.

말 그대로의 시각예술 이기도 하지만 의미를 담은 시각예술을 하고 있고, 하고 싶어요.


가장 뚜렷이 기억나는 예술을 처음 접하게 된 추억은 어떤 것입니까?

저는 아주 오래전부터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변함없이 ‘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 저의 꿈을 엄마는 다르게 바라고 계셨어요. 

오래전에 우연히 유치원 때 활동한 자료를본 적이 있는데 언니는 간호사, 저는 선생님이 된 미래의 모습을 그림이 있었어요. 

엄마가 그린 그림을 그때 처음 보았던 것 같아요. 장래 희망을 떠나 그림 자체가 꽤 독특하고 인상적이였어요.

중학교, 고등학교를 지나 대학교, 그리고 지금까지 놓지 않고 그림을 그리며 꽤 다양한

예술을 접하고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그림만큼 저에게 사적인 영향을 준 건 없었던 것 같아요. 

각자의 바람은 달랐지만 엄마에게서 느낀 미적 감각과 저의 어린 시절의 바람이 섞여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의 예술로 사람들 혹은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까?

저는 존재성을 원했어요. 그래서 타인을 보고 주변을 보고 흰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며 답을 얻으려 했어요. 

남에게 물어보는 것 보다는 혼자 그림에 담아내는 게 좋았고 아무 의미 없이 관계없이 그림 안에서 저의 존재를 느끼는 게 좋았어요. 

 지금 사회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내보일 수 있는 수단이 많고 그만큼 시간을 많이 쏟아요. 

때문에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자신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그림을 처음 사주신 분이 ‘어두운 듯 하지만 빛을 머금고 있다’라고 글을 남긴 적이 있어요. 

그림은 저였지만 본 사람은 자신을 본다는 것, 그때의 나는 어두운 사람이었지만 그분은 빛을 머금은 사람이었을 거에요. 

그렇게 문득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시선을 전달하고 싶어요.


창작할 때 주로 어떤 곳,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십니까?

자주 오가는 길에서 영감을 얻어요. 

12년이 되도록 같은 길을 오고 가고 있어요. 

그 안에서 유독 눈이 가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다른 형으로 다른 색으로 그려지는 순간이 있는데 빛과 어둠이 드는 방향, 방식, 그리고 

어떤 틈 사이에서 다르게 보여지는 형상들을 드로잉하거나 기억 또는 기록해서 작업으로 옮겨요. 

현실의 이미지가 저의 생각과 기억을 거쳐 새롭게 보여지는 오래된 기억을 떠올리듯이 애매모호한 느낌이 드는 순간을 담아내려고 노력해요.

그건 꿈속의 이미지에서도 등장하는데 그림을 그려 작업하는 것 이외에 15년부터 꿈을기록하는 작업도 하고 있어요. 

꿈은 제가 보고 듣고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는 가장 사적인 부분이자 그림을 그릴 때 많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주로 등장하는 형상(불길이나 연기, 물이 흐르는 듯한 형상)이나 장소, 구도 같은 것들이 그림 안에서 빠르고 가벼운 터치들로 표현되는데 

결국엔 다르지만(현실과 허구) 같은 것(내가 본 것들)에서 영감을 얻고 있어요.






당신이 그리고 싶은 미래는 어떤 건가요?

최근까지만 해도 미래를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그림을 그려본 적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가져본 적도 

그 미래가 실제로 저에게 일어날 거라는 희망이나 상상도 없었어요. 

그러다 최근에 오랜만에 전시를 할 수 있는 기회들을 접하면서 그림을 본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에 

‘아, 이래서 지금까지 그림을 그려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했어요. 

대단한 미래보다는 제가 바라는 건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저는 가방 속에 연필과 드로잉북을 가지고 다니며 

작업과 현실에 대한 고민에 수없이 흔들릴 각오를 그려내는 사람이고 싶어요.


당신을 대표하는 색은 무엇인가요?

‘다양한 색을 가지고 싶다. 그 색이 섞여 하나의 색이 되면 좋겠다.’ 언젠가 문득 든 생각이 지금은 삶의 지향점이 되었어요.

그 말 그대로 저는 다양한 것들에 관심이 많고 할 수 있어서 해본 것들도 많은데 그림 이외의 것들을 시도할 때마다 그 속에는 저의 색이 있었어요. 

분명 갖가지 색을 그렸는데 결국엔 하나의 색으로 보여진다는게 신기했어요. 다른 걸 해도 결국엔 제가 있었고 저의 느낌이 있었어요.

꼭 다양한 색을 칠해가며 다른 내가 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저는 현실의 모든 색을 품은 그림자의 검정이 되고 싶어요.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림자는 자신의 물체의 모든 색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저도 그런 색이 되고 싶어요,





*강연이 아티스트의 과거 작품들

<타인에서 지금의 저에게 오기까지의 시선을 그린 과정(2015~현재)>

저의 작업은 지문의 흔적에서부터 시작되었어요. 테이프를 붙이고 찢고 채색하고 떼어내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줘요. 

지문이 가지는 나라는 인식표를 가지고 눈에 보이지 않게 흔적을 찍어가며 쌓이고 쌓여 공간을 이루고 관계를 만들어요. 






<드러나는>, 24.0 x 32.0 , 종이 캔버스에 혼합재료, 2016


흔적의 시작

기억은 흔적이 된다. 내가 가진 기억을 타인은 다르게 기억하고 쉽게 잊는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들은 흔적이 되어 내 속에 새겨져 있다. 이 흔적들이 나라는 형태를 이룬다. 이런 나는 어느 공간을 살아가고 있을까.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흔적과 기억, 이 둘은 한 공간 안에 존재한다. 현재의 나는 3인칭이 되어 과거인지 현재인지 모를 시간에 멈추어있는 무수히 겹쳐있는 나를 바라본다. 그것은 꿈속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흔적은 반복이다.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살아서 움직이고 숨 쉬는 순간에 언제 어디서나 흔적은 쌓여간다.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기에 더 특별하고 의미 있게 다가오지만 그럼에도 눈에 보이고 싶게 하는 건 흔적이 ‘나’이기 때문이다. 

‘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 나는 흔적을 형태로 만들고 공간 안에 보이게 한다.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나는 존재를 찾는다. 

나의 존재일 수도 있고 타인의 존재일 수도 있다. 있지도 않은 존재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라도 좋으니 내가 존재하기 위한 형(形)을 찾는다.


지문이라는 타이틀과 테이프라는 재료를 버리고 의미만 가지고 작업을 이어갔어요.

정말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연필과 드로잉북을 가지고 다니면 수없이 그린 드로잉들이 지금의 저의 작업이 되었어요. 

눈으로 본 순간의 타인을 반투명한 트레이싱지 위에 그리고 지우고 다시 긁고 덧칠하면서 저의 시선 속의 타인으로 재구성해요.




 <사라져서 나타나는> 36x28.2, 트레싱지에 오일파스텔, 2017


‘나’는 내 속에 있지 않았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선 타인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들의 생각, 감정, 목적지, 삶 이런 것들에 궁금증이 더해져 그저 타인을 바라보며 움직임을 담는다. 

움직임과 흐름을 쫓다 보면 어느새 궁금증들은 잊혀지고 종이 위에는 어떠한 흐름만 남는다. 

의미를 부여하던 것이 사라지는 순간, 많은 관계와 특정한 의미가 무의미해지는 순간이 좋았다. 

그래서 나는 관계를 맺지 않은 타인을 그린다. 나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주는 나를 전혀 모르는, 서로를 전혀 모르는 타인들 속에 내가 있었다.

그들은 나를 인식하지 않지만 나는 그들의 존재를 안다. 내가 본 대로 형을 그리고 의미를 담는다.

어둠과 빛은 드러내고 사라지는 순간을 잘 보여준다. 밝아서 보이는 순간과 너무 밝아 보이지 않는 순간,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 순간과 너무 어두워서 눈이 가는 순간.


시선은 타인에서 내 주변의 것들로 옮겨 갔어요. 좁았던 시선이 넓게 확장되었다고 느껴요. 

타인 속에서만 존재하고 싶었던 내가 이제는 타인이 속한 세상 속에 존재하고 싶어졌어요.

 

 <180517> 21x14.7, oil pastel on paper, 2019


<다르게 보여서_에스키스2> 21x14.7, oil pastel on paper, 2020


우린 결국 타인과 살아가지만 결국엔 개인의 공간과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간다. 그 세계에서는 내가 곧 나다.…… 

존재는 단순하다. 자신이 가진 세계만큼의 범위와 의미를 지닌다. 

내가 보고 경험하고 느낀 것들로 이루어져 존재는 개인마다 다른 형태와 색으로 만들어진다.

형태와 색도 중요하지만 내가 중요시하는 건 그 세계가 형성되고 부여되는 과정이다.

작업 되어지는 과정에서 세계는 계속 변화되고 만들어지고 나는 살아간다. 

타인은 보지 못하지만 나는 볼 수 있다. 

타인의 몸짓, 표정, 말이 포착되는 순간 속에서 아주 잠시나마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부분과 닮은 것, 가지고 있지 않아서 닮고 싶은 것을 따라가다 보면 그렇게 나와 타인의 존재성이 생겨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세계를 ‘존재’라고 칭한다.


현재의 작업. 

변화가 많은 것 같지만 변함이 없어요. 저의 시선은 언제나 나를 찾아 헤매고 그려지는 시선 속엔 제가 있어요. 

변하는 게 있다면 저의 그림은 보는 이의 ‘시선‘ 일거에요.

앞으로 제가 보게 되는 시선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요.




<저기 있는 이가 내가 될 때>, 35.2x46, oil on tracing paper, 2020


<변하지 않는 건> , oil on tracing paper, 29.4x22.8, 2021


‘나는 누구다’라고 정해진 단어가 아닌, 기억과 느낌과 생각으로 이루어진 형과 색으로 내가 보는 인식을 통해 나의 세계가 만들어졌다. 존재는 그렇게 시시각각 변해간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생각대로 인식대로 느낀 대로 자신이 재구축한 세계 속에서 모든 존재를 만들어내 움직이게 한다. 

나는 내 작업 속에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여준다.

내가 보는 그날의, 그때의 감정들에 따라 달리 보이는 사람과 풍경을 담아낸다. 

보고 찍고 기록하고 그려내는 행위 속에서 내 시선들의 연결고리를 찾고 있다. 지금의 나는 좀 더 둥근 세상을 본다. 흐릿하게 흘러가는 물 같은 세상을 본다.

그걸 나는 ‘눈이 가는 길’이라고 부른다.

타인과 내 안에서 찾아다니던 존재성을 나는 이제 내가 보는 것들을 나의 안으로 들여와 다시 밖으로 내보내며 그려낸다. 

내 눈이 가닿는 어떠한 특정한 이, 공간, 조화, 부분, 사이, 틈 이러한 것들에 머물게 되는 시선에 물음을 던진다. 

내가 나로 존재한다는 건 내가 보는 것, 보는 형, 보는 방식에 따라 보여지는 것 아닐까?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시선을 따라가면 그 사람이 사는 세상을 알 수 있다.

검정과 무채색, 반투명한 트레이싱지를 주로 사용한다. 빛에 따라 투사되어 보이는 세상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드러내었다가 사라지게 해준다. 

시선은 현실에 있는 것들을 보지만 시선 끝에 내가 살게 되는 세상은 나만의 허구가 된다. 이 둘의 균형을 작업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고민한다. 

나의 작업은 나의 시선에 따라 현재진행형이다.


편집자 인터뷰 소회

"배움에는 끝이 없다." 라는 말처럼 강연이 아티스트는 치열하게 자신의 예술관을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보수와 정립보다 진보와 변화를 꿈꾸고 있는 아티스트에 가깝다.

결코 어느 한 쪽이 더 낫다고 볼 수는 없지만, 자신의 예술관에 대해 끝없이 고민하며 탐구하는 자세는 분명 의미가 있다.

그림이 마냥 좋아서 시작했지만, 하면 할수록 더 어렵게 느껴진다는 그녀의 말 속에는

예술가가 밟아 나가야할 정도(正道)를 그 누구보다 열심히 걷고 있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정도를 걷는 자에게는 어떤 한치의 의심도 존재할 수 없으리라.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그녀의 굳은 예술관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Interview by 고민석

photo by 이행진, 신윤섭

editing by 고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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