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어떤 예술을 하고 있습니까?
A. 디지털 페인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했고,
지금도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Q. 당신의 예술은 어디서 처음 피어났나요?
A. 대학교 2학년 때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솔직한 저 자신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솔직한 감정들을 이미지로 옮겼습니다.
처음으로 저 자신을 솔직히 털어놓을 곳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데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Q. 작품을 통해 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려주세요.
A.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특히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고, 외로움을 덜어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 작품들은 소외된 존재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외된 존재들을 긍정하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스스로를 소외된 존재라 여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는 아무래도 자기긍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자기긍정에서 멈추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소외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Q. 당신이 품고 있는 씨앗이 발아되기까지 겪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면?
A. 두 가지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예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전혀 없어 어떻게 작품활동을 이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저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그림을 계속 그려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야 할지 아직도 막막하기만 합니다.
두 번째로 저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저를 포장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 때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어 시작했던 그림인데, 때때로 솔직하지 못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말로 잘 표현이 안 되지만, 그런 느낌을 받을 때면 항상 초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Q. 본인만의 시그니처가 있나요?
A. 손, 신화, 동물, 그리고 꽃.
손·신화·동물은 소외된 존재들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손은 인간을 상징합니다.
인간의 손은 다른 동물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며, 그렇기에 인간은 이 손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손은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존재 개개인은 소외되고는 합니다.
신화는 거대한 존재인 ‘신’들의 이야기이지만, 현대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굉장히 미미한, ‘소외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동물은 작은 동물들을 주로 그리는데, 이 동물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매우 작은 동물들입니다.
이 소외된 존재들의 이미지를 이어주는 것이 꽃입니다. 제 작품에서 꽃은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꽃은 피었다 지고, 이듬해 같은 자리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저는 소외된 존재들의 이미지를 꽃과 나무의 이미지와 연결 지음으로써 그들 또한 변하지 않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임을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종의 자기긍정이었습니다.

Q. 예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제게 있어 예술은 스스로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제 예술의 시작도 그러했고, 다른 예술가들도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예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좋은 예술이란 솔직한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여,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씨앗부터 만개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A. 이제 막 싹을 틔운 기분입니다.
어떤 감정, 어떤 생각들을 작품에 담아내야 할지, 제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 작품세계가 완성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아가야 할 방향은 찾은 기분입니다.
예술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표현의 방식이라든지, 많이 부족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제가 발전해나가고 있는지는 윤곽이 잡히는 기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제 막 싹을 틔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승원 작가의 과거 작품


거의 처음으로 그렸던 작품입니다.
인간의 충동적인 분노와 파괴 욕구,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거대한 세계 속에서 소외된 인간들은 자연스레 세상에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곧 충동적인 분노와 자기 파괴로 이어집니다.
스스로 무너뜨린 자아 속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느낍니다.
그 고통은 스스로를 구해달라는 내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간 스스로를 잠식해 나갑니다.


제 집 앞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습니다.
전 봄이 오기 전까지 그 나무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봄이 오고, 분홍빛의 꽃이 피고 나서야 전 그 나무가 벚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11개월간은 그저 녹색의 나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녹색’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우리들의 녹색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 인생의 극히 일부분, 즉 ‘분홍색’만을 주목합니다.
이런 괴리감 속에서 사람들은 외로움 내지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 존재라면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이러한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작품 속 분홍빛의 새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매우 작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존재는 온 몸에 꽃을 두르고 거대한 세상의 관심을 끌어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작지만 거대한 감정인 ‘사랑’을 있는 힘껏 내비쳐봅니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쉽게 소외되고는 하는 우리 존재는 너무나도 쉽게 목소리내기를 단념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들도, 비록 닿지 않는 목소리일지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임을 이 소동물 연작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Ignis>는 라틴어로 불을 의미합니다.
흔히 슬픔은 흘러내리는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 슬픔은 흘러내리기보다 타오르는 감정처럼 느껴집니다.
슬픔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이 한 순간에 타올랐다가 어느 샌가 툭하고 꺼져버립니다.
그리고 슬픔이 꺼진 자리에는 아주 작디작은 잔불만이 남습니다.
우리는 그 잔불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잔불이 다시 타오르고, 우리는 커져가는 슬픔에 빠져듭니다.
<Ignis>는 이러한 슬픔의 속성을 신화적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슬픔은 부정적이고, 작은 감정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신’이라는 거대한 존재에게는 얼핏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신화는 소외된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신화의 주인공인 신 또한 소외된 존재 중 하나로 남습니다.
이 작품 속 불의 신은 하나의 소외된 존재로서 자신의 작고 부정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내비칩니다.


정체성 혼란의 괴로움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짓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너지고, 미처 모르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인간 개인에게 거대한 혼란으로 다가옵니다.
작품 속에서 붕괴된 자아는 회색의 인간 신체로 표현됩니다.
이 인간 신체는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다만 그 녹아내리는 모습은 꽃의 형상을 띠고 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일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란 속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고민과 갈등 속에서 성장하고, 결국 자신만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게 됩니다.
그 아름다움은 어떤 혼란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종류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정체성 혼란은 일종의 ‘아름다운 붕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ămor’는 라틴어로 ‘사랑’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입니다.
인간에게 본능으로 뿌리내린 사랑의 감정은 꽃잎과 한 쌍의 홍학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로 피어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무의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고민과 괴로움을 남깁니다.
작품의 하단에는 나무의 뿌리와 가지, 꽃잎, 한 쌍의 홍학 등 여러 이미지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이미지는 결국 마주 잡은 두 손 앞에서 아주 단순한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최근 사랑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노란색, 파란색, 갈색 등의 색으로 변화하던 사랑의 감정이 끝내 무지개 빛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행복을 줍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그 속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결국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남은 사랑의 색은 찬란하고, 성숙한 무지개 빛이 됩니다.
편집자 인터뷰 소회
자신만이 알고 있는 모습을 가감없이 모두에게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솔직함을 가끔 작품 속에 담기도 하는데
그 용기있는 행위 자체만으로, 존중할만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향유하고, 그것을 통해 나를 뒤돌아본다.
*김승원 작가 모아도 프로필 보러가기
https://art-moado.com/362
Q. 어떤 예술을 하고 있습니까?
A. 디지털 페인팅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방법으로 그림을 선택했고,
지금도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Q. 당신의 예술은 어디서 처음 피어났나요?
A. 대학교 2학년 때 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에 적응을 잘 하지 못했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도 솔직한 저 자신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솔직한 감정들을 이미지로 옮겼습니다.
처음으로 저 자신을 솔직히 털어놓을 곳을 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저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그것을 표현하는 것은 스스로를 위로하는 데 생각보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Q. 작품을 통해 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려주세요.
A. 그림을 그리면서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특히 부족한 자존감을 채우고, 외로움을 덜어내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 작품들은 소외된 존재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소외된 존재들을 긍정하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저 역시 스스로를 소외된 존재라 여겼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는 아무래도 자기긍정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제 작품이 주는 메시지가 자기긍정에서 멈추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그러했던 것처럼, 소외감,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제 작품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았으면 합니다.
Q. 당신이 품고 있는 씨앗이 발아되기까지 겪은 고난과 역경이 있었다면?
A. 두 가지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예술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이 전혀 없어 어떻게 작품활동을 이어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 분야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고, 그림을 그리고 싶고, 저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그림을 계속 그려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야 할지 아직도 막막하기만 합니다.
두 번째로 저 자신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하고 저를 포장하려 한다는 느낌이 들 때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저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싶어 시작했던 그림인데, 때때로 솔직하지 못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게 무슨 느낌인지 말로 잘 표현이 안 되지만, 그런 느낌을 받을 때면 항상 초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Q. 본인만의 시그니처가 있나요?
A. 손, 신화, 동물, 그리고 꽃.
손·신화·동물은 소외된 존재들의 상징으로 사용됩니다.
손은 인간을 상징합니다.
인간의 손은 다른 동물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분됩니다.
섬세하고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며, 그렇기에 인간은 이 손으로 자신들만의 세계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손은 인간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인간 존재 개개인은 소외되고는 합니다.
신화는 거대한 존재인 ‘신’들의 이야기이지만, 현대사회에서 그 영향력이 굉장히 미미한, ‘소외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동물은 작은 동물들을 주로 그리는데, 이 동물들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매우 작은 동물들입니다.
이 소외된 존재들의 이미지를 이어주는 것이 꽃입니다. 제 작품에서 꽃은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꽃은 피었다 지고, 이듬해 같은 자리에서 다시 피어납니다.
저는 소외된 존재들의 이미지를 꽃과 나무의 이미지와 연결 지음으로써 그들 또한 변하지 않는,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진 존재임을 상기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일종의 자기긍정이었습니다.
Q. 예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제게 있어 예술은 스스로를 가장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제 예술의 시작도 그러했고, 다른 예술가들도 그러한 열망을 가지고 예술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좋은 예술이란 솔직한 예술이라 생각합니다.
자기 자신을 가장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사용하여,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이 좋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씨앗부터 만개에 이르기까지,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A. 이제 막 싹을 틔운 기분입니다.
어떤 감정, 어떤 생각들을 작품에 담아내야 할지, 제가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을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제 작품세계가 완성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나아가야 할 방향은 찾은 기분입니다.
예술을 대하는 태도라든지, 표현의 방식이라든지, 많이 부족하지만 어떤 방향으로 제가 발전해나가고 있는지는 윤곽이 잡히는 기분입니다.
이런 점에서 이제 막 싹을 틔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승원 작가의 과거 작품
거의 처음으로 그렸던 작품입니다.
인간의 충동적인 분노와 파괴 욕구, 그리고 그에 수반하는 고통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거대한 세계 속에서 소외된 인간들은 자연스레 세상에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곧 충동적인 분노와 자기 파괴로 이어집니다.
스스로 무너뜨린 자아 속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고통을 느낍니다.
그 고통은 스스로를 구해달라는 내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간 스스로를 잠식해 나갑니다.
제 집 앞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습니다.
전 봄이 오기 전까지 그 나무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봄이 오고, 분홍빛의 꽃이 피고 나서야 전 그 나무가 벚나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꽃을 피우지 못하는 11개월간은 그저 녹색의 나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녹색’으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우리들의 녹색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 인생의 극히 일부분, 즉 ‘분홍색’만을 주목합니다.
이런 괴리감 속에서 사람들은 외로움 내지 소외감을 느낍니다.
이 작품에서는 인간 존재라면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이러한 외로움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작품 속 분홍빛의 새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매우 작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이 작은 존재는 온 몸에 꽃을 두르고 거대한 세상의 관심을 끌어봅니다.
그리고 자신의 작지만 거대한 감정인 ‘사랑’을 있는 힘껏 내비쳐봅니다.
거대한 세상 속에서 쉽게 소외되고는 하는 우리 존재는 너무나도 쉽게 목소리내기를 단념하고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작은 존재들의 목소리들도, 비록 닿지 않는 목소리일지라도 여전히 아름다운 것임을 이 소동물 연작을 통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Ignis>는 라틴어로 불을 의미합니다.
흔히 슬픔은 흘러내리는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 슬픔은 흘러내리기보다 타오르는 감정처럼 느껴집니다.
슬픔은 몸을 제대로 가눌 수조차 없이 한 순간에 타올랐다가 어느 샌가 툭하고 꺼져버립니다.
그리고 슬픔이 꺼진 자리에는 아주 작디작은 잔불만이 남습니다.
우리는 그 잔불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 예상치 못한 순간에 잔불이 다시 타오르고, 우리는 커져가는 슬픔에 빠져듭니다.
<Ignis>는 이러한 슬픔의 속성을 신화적 이미지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슬픔은 부정적이고, 작은 감정입니다.
이러한 감정은 ‘신’이라는 거대한 존재에게는 얼핏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신화는 소외된 이야기이기도 하며, 그렇기에 신화의 주인공인 신 또한 소외된 존재 중 하나로 남습니다.
이 작품 속 불의 신은 하나의 소외된 존재로서 자신의 작고 부정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내비칩니다.
정체성 혼란의 괴로움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짓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단단하다고 생각했던 가치관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너지고, 미처 모르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인간 개인에게 거대한 혼란으로 다가옵니다.
작품 속에서 붕괴된 자아는 회색의 인간 신체로 표현됩니다.
이 인간 신체는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다만 그 녹아내리는 모습은 꽃의 형상을 띠고 있습니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것은 분명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일인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혼란 속에서 더욱 선명해집니다.
고민과 갈등 속에서 성장하고, 결국 자신만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게 됩니다.
그 아름다움은 어떤 혼란 속에서도 결코 변하지 않는 종류의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정체성 혼란은 일종의 ‘아름다운 붕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ămor’는 라틴어로 ‘사랑’을 의미합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받는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일입니다.
인간에게 본능으로 뿌리내린 사랑의 감정은 꽃잎과 한 쌍의 홍학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로 피어납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무의 가지처럼 여러 갈래로 뻗어나가는 고민과 괴로움을 남깁니다.
작품의 하단에는 나무의 뿌리와 가지, 꽃잎, 한 쌍의 홍학 등 여러 이미지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이미지는 결국 마주 잡은 두 손 앞에서 아주 단순한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최근 사랑의 감정을 색으로 표현하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노란색, 파란색, 갈색 등의 색으로 변화하던 사랑의 감정이 끝내 무지개 빛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합니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때로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행복을 줍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하고, 그 속에서 혼란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결국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남은 사랑의 색은 찬란하고, 성숙한 무지개 빛이 됩니다.
편집자 인터뷰 소회
자신만이 알고 있는 모습을 가감없이 모두에게 드러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예술가들은, 이러한 솔직함을 가끔 작품 속에 담기도 하는데
그 용기있는 행위 자체만으로, 존중할만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술을 향유하고, 그것을 통해 나를 뒤돌아본다.
*김승원 작가 모아도 프로필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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