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18 오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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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기소개와 어떤 예술을 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세요.


A.  독학예술가(self-taught artist)이자, 직장인이면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혜재입니다.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고, 2014년부터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을 그려왔습니다. 

정식 예술교육 밖의 비주류 예술 개념은 1920년대 초 유럽에서 정신의학을 중심으로 태동했고, ‘아르 브뤼’(Art Brut), 

‘아웃사이더 아트’(Outsider Art), ‘독학 예술’(Self-taught Art) 등의 이름으로 

미국과 유럽에서 개념화와 세분화, 확대와 정착의 과정을 거쳐왔습니다. 

해외에서는 이미 많은 비주류 예술가들이 주류 미술계에서 ‘인싸’로 인정받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아싸’ 미술가들에게 한국은 아직 ‘불모지’에 가깝습니다. 

한국 예술계에서 비주류 예술가들의 입지가 보다 확고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Q. 당신의 예술의 시작점은 어디였나요?


A.  어릴 적부터 저는 ‘그림 앓이’가 심한 ‘몽상가’였습니다.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미술전집을 장난감보다 더 좋아했고, 교실을 아름답게 꾸미고 싶어했고, 

만화를 보고 그리면서 미술과 더 가까워지고자 했죠. 

미대에 진학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지만, 생계 등을 고려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진로를 찾고자 인문대로 진학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줄곧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는데, 어느 순간 마음 한편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그림에 대한 열망이 용솟음치기 시작했어요. 

오랜 사회생활로 업무에 ‘규격화’된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 본연의 자아를 펼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했던 거죠. 

결국 ‘나다움’을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스케치북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Q. 지금 작업의 방향성을 결정하게 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A.  제가 그림을 그릴 때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메시지와 선의 미학’입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렸던, 만화와의 오랜 인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유년 시절에 끼고 살았던 학습만화, 순정만화, 디즈니 애니메이션,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의 만화 동아리 활동을 생각해 보면 

“저를 키운 건 팔 할이 만화였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어른이 된 후에는 신문이나 시사 잡지에 나오는 ‘만평’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 

단 한 칸의 그림으로 희로애락의 감정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에서의 인간의 행위를 비평·풍자하는 그림의 위력이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소위 ‘메시지 있는 그림’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과 열망이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리게 된 주된 동기가 되었죠. 

한편 만화가 ‘선(線)의 마술’이라는 점도 주목했어요. 

집중선, 속도선 등의 효과선을 통해 만화에서는 인물의 감정, 현재의 상황 등을 보다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문서에서 강조할 부분의 글자를 굵게 또는 크게 표기하듯이, 악보에서 갖가지 악상 기호들을 활용해 

음악의 섬세한 강약과 빠르기를 알려 주듯이, 선은 만화가 표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하죠. 

제 일러스트레이션 작품들에서도 선의 역할은 매우 중요합니다. 

선의 굵기와 수의 섬세한 변화를 통한 표현의 강약 조절은 제 작품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원천입니다.









Q. 창작할 때 주로 어떤 곳,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십니까?


A.  저는 스스로를 ‘생산적인 몽상가’라고 생각합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결국 작품으로 탄생하게 되거든요. 

개인적으로 멕시코의 여류 화가 프리다 칼로의 삶이나 작품 세계에서 특히 많은 영감을 받았는데요. 

특히 칼로의 작품들 중에 <물이 내게 주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목욕 중에 욕조에 담긴 물과 자신의 발을 보며 그린 이 작품은 칼로 자신의 모든 꿈과 상상력, 무의식, 

그리고 개인적 정체성과 삶의 발자취가 집대성되어 있습니다. 

욕조 안에서 상념에 잠긴 프리다 칼로처럼, 저 또한 제 스스로에 대해 마음속에서 대중없이 그려봅니다. 

평범하고 소소한 제 일상에서 끊임없는 몽상을 통해 저만의 꿈과 환상, 무의식을 환기하고 이를 스케치북에 담아내는 거죠.

 



 





Q. 지금까지 작가 활동을 하며 장애물이나 어려움이 있었다면 무엇이었나요?


A.  한국사회에서는 소위 ‘삼연’(三緣)이라 불리는 ‘혈연, 학연, 지연’이 여전히 중요하게 여겨지지요. 

정규 교육도 받지 않고 관련 네트워크에도 속해있지 않은 제가 문화 예술 분야에서 인정받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국 미술계의 벽은 저에게 높기만 했고, 활동을 시작한 초기에는 정말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한국 밖의 세상이 이방인인 저에게 훨씬 더 열려 있었고, 

최초의 입상과 입선도 해외에서 주최하는 국제 공모전들을 통해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해외 예술계에서는 나이 제한도 없고, 학연과 지연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작품과 그 안의 메시지만이 판단의 기준이 됩니다. 

한국에서 전문적인 예술 활동을 시도했을 때 예술에 대한 저의 의지와 열정을 의아해하거나, 

심지어는 황당해하기까지 하는 시선들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제가 미대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전시 공간을 사용할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았을 때는 정말 힘이 빠지더군요. 

문화 예술 분야는 다른 어떤 것보다 독창성이 요구되며, 예술성을 평가할 때 콘텐츠 자체가 결정적인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Q. 당신의 예술에 목적지를 둔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이고 도달했을 때 당신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요?


A.  『폴리메스』의 저자 와카스 아메드는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인재는 ‘폴리매스’(polymath)임을 강조합니다.  

폴리매스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양한 영역에서 출중한 재능을 발휘하면서, 방대하고 종합적인 사고와 방법론을 지닌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끝없는 호기심과 뛰어난 지능, 놀라운 창의성을 바탕으로 한계를 거부하는 다재다능함을 발휘하지요. 

마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말이죠. 폴리매스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라기보다는, 

다양한 분야 모두에서의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다 빈치처럼 천재도 아닌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폴리매스적인 가치를 추구해왔고 그간 제가 쌓아온 정보와 노하우를 바탕으로 

‘독학 예술가’라는 또 하나의 전문 경력을 구축해 나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향후에도 폴리매스 예술가로서 끊임없이 성장해나가고 싶습니다.









Q. Where I am, 나는 지금 어디쯤에 와있을까요?

 

A.  여전히 저는 갈 길이 한참 먼 예술가입니다. 

예술을 독학하고, 공모전에 지원하고, 전시 장소를 물색하고, 

어떻게 하면 문화예술 분야에서 성공적인 네트워킹을 하면서 제 작품들의 가치를 어필할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하지만 제 작품들을 구입해 행복하게 감상하는 국내외 콜렉터들이 하나 둘 생기는 것을 보면서 무한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작품을 통해 더욱더 관객들과 교감하고 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도록 제 역량을 향상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노력하는 만큼, 느리지만 예술계에서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혜재 작가의 과거 작품들

 


쿠바 칵테일(Cuban Cocktail, 2019). 29.7 X 42 cm. 펜, 아크릴, 수채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 출품작이자, 

2021년 이탈리아 현대작가센터(COCA) 주최 <제3회 COCA 국제 공모전> 입선작이다. 

작가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포함되어 있는, 중미 카리브해의 섬나라 쿠바는 작가에게 동경과 호기심의 대상이다. 

쿠바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미국의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시가와 함께 칵테일을 늘 입에 달고 살았다. 

모히토(Mojito), 다이키리(Daiquiri), 쿠바 리브레(Cuba Libre)는 쿠바의 3대 칵테일로 손꼽힌다. 

쿠바의 어느 칵테일 전문가의 말처럼 쿠바의 칵테일은 ‘단순한 재료의 혼합이 아니라 진정한 창조물이자 예술작품’이다. 

아열대 기후, 다양한 과일, 세계 최고의 럼주를 생산하는 쿠바는 칵테일을 위한 최적의 장소다. 

이와 더불어 쿠바 칵테일에는 쿠바의 역사와 정서가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다. 

이 작품에서 칵테일의 컵은 쿠바의 대표 동물 중 하나인 홍학(플라밍고)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체 게바라의 모자, 시가, 쿠바 국기, 류트, 자동차, 무희 등 다양한 메타포들이 쿠바의 역사와 문화, 정체성을 보여준다.





잠보, 아프리카!(Jambo, Africa!, 2018). 29.7 X 42 cm. 펜, 색연필, 수채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 출품작이자, 

2021년 이탈리아 현대작가센터(COCA) 주최 <제3회 COCA 국제 공모전> 입선작이다. 

‘잠보’(jambo)는 스와힐리어로 ‘안녕’이라는 뜻이다.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작가에게 아프리카 대륙은 줄곧 친숙한 곳이자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작가 또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을 대상으로 교육 지원 사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프리카는 흔히 분쟁, 기아, 빈곤, 질병의 온상지로 인식되고 있지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의 진가를 되새기고자 한다. 

아프리카는 36억여 년 전 처음으로 땅이 만들어진 ‘인류의 고향’이자, 

나일 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과 아프리카 북부 및 북동부 지역에서 꽃 피운 이슬람 문명의 요람이다. 

광활한 대초원을 누비는 야생 동물을 비롯해 풍부한 자연 자원도 아프리카의 큰 자산이다.

이 작품에서 코끼리의 귀는 실제 아프리카 대륙의 모양을 형상화하고 있다. 

작가에게 아프리카는 많은 아픔과 상처를 뒤로 하고, 

잠재된 무한한 가치와 가능성으로 다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희망의 땅’이다.





물고기(Fish, 2018). 26 X 36 cm. 펜과 수채


2019년 홍콩 <아시아 컨템퍼러리 아트쇼> 출품작이자, 

2021년 이탈리아 현대작가센터(COCA) 주최 <제3회 COCA 국제 공모전> 입선작이다. 

물고기는 작가의 가장 주된 모티브(motive)로, 다양한 배경과 세부 묘사를 활용해 작가가 꾸준히 그려내고 있다. 

반쯤 드러난 뼈와는 대조적으로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지느러미를 가진 작가의 물고기 이미지는

생성과 소멸의 연속인, 모든 살아있는 생명체의 삶을 상징한다. 

탄생, 성장, 쇠락, 죽음의 과정은 어떠한 생명체에게도 예외가 아니지만, 한 생명체의 죽음을 통해 또 다른 생명체의 탄생이 이루어진다. 

작가에게 물고기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대로 이어지는 삶의 연속성을 상징한다. 

한 생명이 움트는 요람인 물고기의 등에서 탄생과 성장이 이어지고, 그 생명은 화려한 지느러미와 같은 인생의 정점을 맞이한다. 

그러나 야윈 물고기의 얼굴과 앙상한 뼈가 말해주듯이, 모든 생명은 결국 삶의 내리막길과 종점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게 된다. 

그리고 다시, 또 다른 생명이 태동하게 될 것이다. 

이는 생명을 지닌 모든 존재가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생사의 수레바퀴를 돌고 돈다는, 불교의 윤회 사상과도 맥을 같이 한다.





희망은 모든 것을 이겨낸다(Hope Conquers All, 2020). 26 X 37 cm. 혼합 매체

 

2020년 싱가포르 아시아예술협회(AAA)가 주최한 국제 자선 그림 공모전 <World Charity Painting Competition: Fight COVID-19>에서 최고상인 금상(아티스트 부문)을 받은 작품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코코>로 잘 알려진 ‘망자의 날’(Día de Muertos, 11월 2일)은 죽은 친지나 친구를 기억하며 명복을 비는 멕시코의 기념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망자의 날은 슬픔이 아닌, 행복과 희망의 날이다. 

이 기념일은 멕시코의 고대 문명인 아즈텍의 문화에서 비롯되었는데, 아즈텍인들은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모욕이며 죽음이 망자에게 새로운 영적 여행을 위한 시작점이라고 생각했다. 

망자의 날을 대표하는 아이템은 칼라베라(Calavera)라고 불리는 해골 장식이다.

칼라베라를 통해 드러나는 죽음은 지극히 화려하고, 강렬하고, 아름답다. 

2020년에 발발한 코로나19 사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며, 수십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사망하면서 전 세계가 슬픔과 절망에 빠져 있다.

작가는 칼라베라를 통해 코로나19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남은 자들을 위한 행복과 희망을 염원하고 있다. 

또한 방역의 최전선에서 사명감으로 전염병과 맞서고 있는 의료진의 모습에서, 이들이 가져다 줄 밝은 미래를 담아냈다. 

결국 희망은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다.

 




편집자 인터뷰 소회


별의 순간을 위해, 어느 길을 걷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흙 길을 걷던, 잘 포장된 길을 걷던, 누군가 다녀왔던 길을 걷던,

그 마지막 순간에 도달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오혜재 아티스트는 그 별의 순간에 다가가기 위해, 수없이 많은 길을 걷는다.

흙길이면 어떠랴. 

뚜벅뚜벅 씩씩하게 걷는다면,

누구보다 빠르게 그 별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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